ME BEFORE YOU

2020. 3. 16. 23:26Book

 

 

 

 

 

P.531~P.534

 

반드시 프랑 부르주아 거리의 카페 마르키에서 크루아상과 커다란 카페 크렘을 앞에 놓은 책 읽을 것. 클라크, 당신이 이 편지를 읽을 때쯤이면 이미 몇 주쯤 흘렀겠죠. (새롭게 발견한 당신의 추진력을 감안하더라도 9월 초가 되기 전에 파리까지 갔을 것 같지는 않군요.) 커피는 맛있고 진하고 크루아상은 신선하며, 절대 도로 위에서 평형을 잡지 못하는 그 노천의 금속 의자에 앉아 있을 만큼 날씨도 여전히 맑기를 바랍니다. 나쁘지 않아요, 카페 마르키는. 혹시 점심 먹으러 다시 와보고 싶은 마음이 들면, 스테이크도 괜찮아요.

그리고 왼쪽 길 따라 쭉 내려다보면 라르티장 파르퓌메르라는 가게가 보였으면 좋겠는데, 이 편지 읽고 거기 들러서 파피용 엑스트렘(정확하게 기억이 안 나네)인가 하는 향수를 꼭 시향해 봐요. 늘 당신이 쓰면 굉장히 멋진 향이 날 거라는 생각을 했거든요. 좋아요, 지시는 끝났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몇 가지 있는데 직접 말했으면 좋았겠지만 첫째, 당신이 감정을 앞세워서 흥분을 했을 거고 둘째, 내가 이 모든 말들을 큰 소리로 입 밖에 내어 말하게 내버려 두지도 않았을 거예요. 당신은 늘 말이 너무 많았거든요. 그래서 용건은 이렇습니다. 처음에 마이클 라울러한테 받은 수표는 전체 금액이 아니라 그저 작은 선물일 뿐이에요. 실직한 후 몇 주 동안 생활하고 파리까지 올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해서였죠. 영국으로 돌아가면 이 편지를 가지고 마이클의 런던 사무실로 찾아가요. 그러면 그가 내 대신 당신 이름으로 개설해둔 계좌를 쓸 수 있도록 관련 서류들을 다 챙겨줄 겁니다. 이 계좌에는 당신이 어디 꽤 괜찮은 집을 마련하고 학위 과정 등록금을 대고 풀타임으로 공부를 하는 동안 생활비를 대고도 넉넉한 금액이 들어 있어요. 우리 부모님도 설명을 다 들으셨을 겁니다. 이 편지와, 마이클 라울러의 법무 처리로 최대한 소란스럽지 않게 진행되면 좋겠군요. 클라크, 당신이 과호흡으로 헐떡거리기 시작하는 소리가 벌써부터 들리는 것 같아요. 너무 놀라지 말고, 어디 남한테 다 줘버릴 생각도 하지 말아요. 당신이 남은 평생 편하게 엉덩이 깔고 앉아서 먹고 살만큼 충분한 돈은 아니니까. 하지만 이걸로 당신은 자유를 살 수 있을 겁니다. 우리 둘 다 고향이라고 부르는 그 폐소 공포증을 유발하는 좁은 마을과, 지금까지 당신이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했던 선택들로부터 해방될 자유 말입니다. 내가 이 돈을 주는 건 당신이 날 애틋하게 그리워하거나 빚진 기분으로 살거나, 아니면 이게 무슨 빌어먹을 기념품이라고 느끼길 바라서가 아니에요. 내가 이 돈을 주는 건 이제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게 별로 남지 않았는데, 당신만은 날 행복하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나를 알게 되어 당신이 고통스럽고 또 깊은 슬픔에 빠졌다는 걸 잘 알고 있어요. 그리고 어느 날 당신이 지금보다 나한테 화를 덜 내게 되고 또 마음도 가라앉으면, 나로서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알아주면 좋겠어요. 그리고 또, 이로써 당신은 나를 만나지 않았던 때보다는 훨씬 더 좋은, 아주 멋진 삶을 살 수 있는 발판을 갖게 되었다는 것도요. 새로운 세상에서 당신은 약간 편치 않은 느낌을 갖게 될지도 몰라요. 사람이 안전지대에서 갑자기 튕겨져 나오면 늘 기분이 이상해지거든요. 하지만 약간은 들뜨고 기뻐하길 바랍니다. 그때 스쿠버 다이빙을 하고 돌아왔을 때 당신의 얼굴이 내게 모든 걸 말해주었어요. 당신 안에는 굶주림이 있어요, 클라크. 두려움을 모르는 갈망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당신도 그저 묻어두고 살았을 뿐이지요.

고층 건물에서 뛰어내리거나 고래들하고 수영하라는 얘기는 아니에요. (당신이 그런다면 내심 좋아하겠지만.) 그게 아니라 대담무쌍하게 살아가라는 말이에요. 스스로를 밀어붙이면서. 안주하지 말아요. 그 줄무늬 타이츠를 당당하게 입고 다녀요. 그리고 어떤 말도 안 되는 남자한테 굳이 정착하고 싶다면, 꼭 이 돈 일부를 어딘가에 다람쥐처럼 챙겨둬요. 여전히 가능성이 있다는 걸 알고 사는 건, 얼마나 호사스러운 일인지 모릅니다. 그 가능성들을 당신에게 준 사람이 나라는 것만으로도, 어쩐지 일말의 고통을 던 느낌이에요. 이게 끝입니다. 당신은 내 심장에 깊이 새겨져 있어요, 클라크. 처음 걸어 들어온 그날부터 그랬어요. 그 웃기는 옷들과 거지 같은 농담들과 감정이라고는 하나도 숨길 줄 모르는 그 한심한 무능력까지. 이 돈이 당신 인생을 아무리 바꾸어놓더라도, 내 인생은 당신으로 인해 훨씬 더 많이 바뀌었다는 걸 잊지 말아요.

내 생각은 너무 자주 하지 말아요. 당신이 감상에 빠져 질질 짜는 건 생각하기 싫어요. 그냥 잘 살아요. 그냥 살아요.

 

 

사랑을 담아서, 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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